내 인생을 언제 마감할까?
언젠가 넷상에 그런 댓글을 적은 적이 있다. '나는 더도 덜도 말고 나이 70이 되면 죽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고. 지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정년인 65세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다음 5년 동안은 삶을 정리한 다음 죽는 것을 계획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40 이후의 삶이 재미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40이 넘으면 업무처리능력이 떨어지고, 몸도 예전같지 않아서 즐길 수 없는 것이 많아질 것 같단 느낌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 때부터는 서서히 인생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둘째, 후대의 인류를 생각해서이다.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지금의 지구 인구로도 그것을 나눠갖기가 어려운 판인데,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 그 자원을 갖고 살아야 할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그것만한 재앙도 없을 것이라 본다. 따라서 그 생각을 갖고 딱 70되는 해에 죽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첫번째 이유에 대한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바꾸게 되었다. 마치 슬슬 인생의 은퇴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 4050을 '후기청년'이라 규정하는 것을 보며 '그 시기를 절망적으로 볼 필요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번째 이유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나'라는 청년의 생각을 바꾼 '4050 후기청년'의 서평을 이 관점을 가지고 써보고자 한다.
4050,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기
흔히 4050은 왕성하게 일하는 시기를 지나 관리·감독을 맡다가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대로 일컬어진다. 이전보다 창의성, 기억력 등이 떨어져 새로운 아이템을 창출해내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스스로 "나는 머리가 굳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힘드니 젊은 여러분이 한 번 만들어봐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전면부정해버린다.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다.
'1956년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6,000여 명을 대상으로 동일인에게 7년마다 인지검사를 실시한 시애틀종단연구 결과, 어휘나 공간적 방위, 언어기억, 문제해결능력 등 인지영역에서 가장 정수인 부분에서 인간의 수행능력은 20대 시절보다 40,50대에 이르러 훨씬 더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복잡하고 정교한 인지기술 분야에 대한 수행역량이 가장 무르익은 나이대는 평균 40세에서 65세였다.' -p.33-
즉,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인지능력이 더욱 높아지는 시기는 4050 시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이유로 일에 대한 주장을 편다면, 현장에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그간 쌓아온 경험과 능력을 썩히지 않고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인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특히 희망을 발견했다. 나는 나중에 게임업계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창의성이 가장 많이 발휘되어야 하는 곳에 말이다. 그런데 기존의 정의대로 따르면 나는 40대,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 업계의 퇴물이 될지도 모르는 인생이다. 특히나 요즘같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젊을 때는 경험이 없어서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나이들어서는 더이상 쓸모있는 인재가 아니라서 나가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과에 따르자면, 나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고, 결국 오랜 기간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특히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업무능력만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그 수치가 높은 시기는 20대가 아닌 4050인 것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그것을 긍정한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25년간 연구대상이 된 사람들을 추적해 발달심리학 학회지에 최근 게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상승해 중년기에 더욱 만발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일생을 거쳐 사람의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지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았다.생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따라 행복도의 추이가 달라질 뿐 나이는 그 인과요소가 아니다.' -p.31-
인생을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는 시기도 결국은 4050일 때에 절정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40이 다다른다고 해서 마냥 의기소침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예능 프로 '라디오스타'를 보다가 윤종신이 '30대에는 40대가 되면 즐길 게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40대가 되니 40대만의 즐거움이 있더라'라는 말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그것이 문득 떠올랐었다. 그 시기에 즐길 수 있는 행복, 그 시기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의 즐거움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새로운 즐거움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잖은가? 그것도 인생의 행복도가 가장 높은 시기인데 말이다. 이제는 정말로 4050을 '중년의 위기'로 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 4050이 그렇다면 지금 2030은?
나는 지금 20대 중반을 보내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앞날이 창창한' 나이이다. 하지만 주위의 반응과 달리 나는 너무 늙었단 생각이 많다. 남들에 비해 이제까지 이뤄놓은 것이 많지도 않고, 이전에 즐기지 못한 것을 다시는 즐길 수 없기에 허망함이 느껴지고, 앞으로는 시간이 더 빨리 갈 것이기에 나이듦을 걱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다. 내 주위의 20대들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하면서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며 앞날을 걱정한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수명은 늘어났을지언정 자기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는 시간은 이전과 같기에 조바심을 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에 나와있는 전세계 4050은, 그리고 나이에 대한 바깥세상의 인식은, 적어도 나의 생각과는 달리 훨씬 더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나의 생각과 훨씬 많이 달라졌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서 바텐더의 꿈을 이뤘다든가, 4050의 시기에 자기와 같은 날 태어난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즐거움을 찾아간다든가, 남극 탐험 원정대를 교육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 등 4050에 선택한 새로운 직업과 삶이 그들을 더욱 역동적인 삶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또한 UN은 생애주기별 연령지표에서 이제 청년기를 18세~65세로 규정하는 등 정책적으로도 시기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이런 식으로 4050이 청년기로 들어선다면, 지금의 2030은 더 희망찬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의 4050이 이런 삶을 누리고 있는데, 2030은 지금 4050의 삶은 물론이고, 지금보다도 더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4050이 정신적, 직업적인 면에서 노화가 늦춰지는 것이라면, 지금 2030이 4050이 되면 신체적인 면에서 노화가 훨씬 더 늦춰지는 일이 벌이진다든가의 일 말이다. 실제로 책에서는 기술의 발달로 약 한 알로 외국어를 습득한다든가, 한 사람의 기억을 모두 저장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칩 등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책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4050이 후기청년으로 바뀐 것은, 지금의 2030이 앞으로 더 행복한 미래를 약속받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걱정, '자원은 유한하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시간이 늘어났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원에 대한 고민을 푼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날수록 이 지구에 머무르는 인간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러면 그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할 식량, 입어야 할 옷, 살아야 할 집또한 점점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래의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연 미래의 인류는 그 상황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왠지 그런 고민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장 지금 우리나라의 고용문제를 생각해보면, 지금 후기청년인 4050이 많은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2030이 자리잡을 틈이 없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4050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 진행되면, 어쩌면 지금 2030이 4050이 되어서도 이렇다 할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후기청년이 20년 뒤에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말이다.
지금 후기청년이 이러한 상황을 바람직하게 마무리 지으려면 뒷세대에게 갈 수 있는 악영향을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청년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실행하겠지만, 후기청년도 그에 맞춰 호응하고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불혹'과 '지천명'을 생각하며
일찍이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不惑)', 50을 '지천명(知天命)'이라 이름붙였다. 불혹은 '갈팡질팡하지 않고 의혹이 없는 나이'임을 뜻하는 것이고, 지천명은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임을 뜻하는 것이다. 미숙하고 부족한 단계를 넘어서서 원숙하고 완성된 단계를 이뤄가는 나이가 바로 후기청년인 것이다. 실제로 후기청년은 자기 경험을 잘 살려서 일과 삶에서의 만족도를 높여가는 단계이니, 어쩌면 공자는 그 시기의 값진 부분을 알아보고 이렇게 이름을 붙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청년기의 연령은 더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나이가 장벽이 되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4050 후기청년은 그 시작을 끊은 세대이다. 앞으로 그들이 변화하는 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잘 살리고, 부정적인 면을 없애나간다면 미래 인류에게 존경받고 모범이 될 세대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삶에 의혹이 없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천명을 아는 시기의 사람들이니 그럴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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