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charset="utf-8"> <meta name="keywords" content="박근혜, 헌재, 최종변론, 출석, 적극검토">

朴대통령, 헌재 최종변론 출석 적극 검토

史臣은 말한다. "그동안 청와대는 몇 번이나 순리를 따르는 척하다가 역행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왔었다. 그 정도가 심하여 마치 바다에 잔잔했다가 심한 파도가 몰려오는 듯한 형세이다. 헌데 지금의 이 말은 대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특히나 이는 대통령 스스로가 직접 밝힌 것이 아닌, 측근과의 대화를 통해 짐작하는 것이니 그 진정성에 더욱 의심이 가는도다. 이러한 자가 정부의 수장으로서 이 나라를 이끌어 왔었던 것이니 기강이란 기강은 모두 무너진 것이 아니겠는가? 아, 무릇 질서란 가장 위에 있는 자부터 그 본을 보여 감히 아랫사람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것이거늘, 지난 몇 년간은 위부터 방만한 모습을 보였으니 작은 혼란조차 일상이 된 것 아니겠는가? 그 책임이 무한히 크니 더더욱 엄중히 죄를 묻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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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charset="utf-8"> <meta name="keywords" content="넷마블, 구로의 등대, 문화 개선안, 야근, 자살"> 지난 2월 7일, 넷마블이 '넷마블컴퍼니 2월 정례 경영포럼'에서 자사 혁신을 위한 '일하는 문화 개선안'을 만들고 이를 13일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야근과 주말출근 금지, 탄력근무제 도입, 전 직원 종합건강검진 실시 등이 문화 개선안의 골자이다. 작년에 발생했던 넷마블 직원 두 명의 사망으로 인한 넷마블의 이미지 훼손이 이런 조치를 취하게 만든 셈이다.

[뉴스] "야근 및 주말근무 없앤다" 넷마블, 일하는 문화 개선안 13일부터 도입


사실 넷마블의 이런 조치는 꽤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넷마블이 얼마나 사람 잡는 기업인지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었고, 그게 두 직원의 사망사건 이후 일반언론사에까지 퍼져나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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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자살사건의 경우, 업무량이 많아서 고생한 것과는 별개의 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 스스로 감히 짐작컨대, 차라리 많은 근로시간만큼 제대로 급여를 줬다면 과연 횡령사건이 일어났을까? 일은 많고, 급여는 적으니 직원이 그런식으로 탈선하지 않고 배길 리가 있을까 싶다.
언론에 나온 것 외에 내가 사적으로 들은 정보도 있다. 넷마블에 처음 인턴 생활을 하면 기존 직원 한 명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서 일을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인턴이 뭔가 실수를 한 번 하면 바로 "쟤 멘토 누구야?" 이러면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낸다고. 인턴 때부터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정직원이 되면 얼마나 많은 압박에 시달리는걸까. 리니지2 레볼루션이 매출 2,000억을 넘어섰다고 좋아하기엔, 직원들의 삶이 너무도 피폐한 곳이 넷마블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넷마블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식의 과도한 근무&낮은 급여 문제는 게임업계의 해묵은 문제였다. 이런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템이 바로 '붕붕드링크'이다. 지금은 이게 마치 수험생들을 위한 명약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는데, 이 붕붕드링크가 만들어진 유래를 찾아보면 수험생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두 가지 유래가 있는데, 하나는 지금의 인벤 같이 게임업계 언론지로 활동하는 기자들이 잦은 야근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었단 설, 그리고 또 하나가 게임 기획자들이 개발 과정에서 일상처럼 되는 야근을 버티기 위해 만들었단 설이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게임업계는 살인적 업무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경영진이 이것을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다. 주변의 게임업계 종사자 몇 명만 붙잡고 물어봐도 단박에 알 수 있다. 당연히 여기는 걸 넘어서 이런 모습을 흐뭇하게 여기기까지 한다니 이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대한민국 게임업계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당장 옆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이렇게까지 천대받지는 않는데 말이다. 오죽하면 여기보다 나은 엔씨소프트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엔씨소프트 20대 여직원, 사옥 10층서 투신 자살


상황이 이렇다보니 넷마블의 개혁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이미 이 사실을 보도한 기사 댓글들만 하더라도 마치 양치기 소년의 얘기를 듣는 듯한 반응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사내문화를 바꿔보려 한 적도 없는 곳에서, 그것도 가장 근무환경 평판이 안좋은 곳에서 좋은 일 한다는데 믿을 리가 있겠는가? 특히나 사내문화란 것은 버그수정하듯이 몇 개 고친다고 바로 변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업계 내외로 쏟아지는 비난을 이기지 못해 바꾸는 듯한 식이니 진심으로 근무환경의 질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윗선에서 어떤 꼼수로 비난을 피해갈지 기대(?)까지 될 정도이다.
하지만 넷마블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사내문화를 개선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넷마블만의 문제가 아닌, 게임업계 전반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고질병이다. 넷마블이 이에 대해 제대로 메스를 들이대서 대수술을 무사히 마무리한다면, 그것을 시작으로 게임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넷마블도 업계에선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니 다른 기업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엄청난 변혁의 시기를 거치는 중이다. 게임업계도 이 흐름에 맞춰 과거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부디 넷마블이 단순히 꼼수 부리며 야근만 안시키고 다른 악폐습이 벌어지는 기업이 아닌, 정말로 일할 맛 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그게 정말로 구로의 등대가 '온전히' 꺼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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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charset="utf-8"> <meta name="keywords" content="조선, 숙종, 왜관, 일본관리, 독도, 안용복, 망언, 사관, 사이다, 논평"> 숙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록이 전해진다. 안용복이 1차로 일본을 갔다온 후, 대마도 관리 '귤진중'이란 자가 조선에 와서 '죽도(여기서는 울릉도+독도로 알아들으면 더 정확하겠다.)'에서 조선 백성이 어업활동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서신을 전달한다. 이에 조선의 예조에서 그를 수용하는 답서를 쓰고 교리 홍중하를 보낸다. 그런데 여기서 일본관리가 망언을 일삼는다.

'이내 교리(校理) 홍중하(洪重夏)를 접위관(接慰官)으로 임명하여 동래(東萊)의 왜관(倭館)에 이르게 했는데, 귤진중이 우리 나라의 회답하는 서신 중에 ‘우리 나라의 울릉도란 말’을 보고는 매우 싫어하여 통역관(通譯官)에게 이르기를, "서계(書契)에 다만 죽도(竹島)라고만 말하면 좋을 것인데, 반드시 울릉도를 들어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하면서, 이내 여러 번 산개(刪改)하기를 청하고는, 사사로이 그 따라온 왜인을 보내어 대마도에 통하여 의논하기를 거의 반 달이나 되면서 시일을 지체하여 결정하지 않으므로, 홍중하가 통역관으로 하여금 이를 책망하니, 따라온 왜인이 사사로 통역관에게 이르기를, "도주(島主)는 반드시 울릉(鬱陵)이란 두 글자를 깎아 버리려고 했으니, 난처(難處)한 일이 있는 듯하며, 또한 자세히 고치기를 청하는 정관(正官)의 서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이와 같이 되었다." 하고는, 또 번갈아 근거 없는 말을 하면서 다투므로, 우리 조정에서 마침내 들어주지 않았다. 귤진중이 꾀가 다하고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그제야 서계를 받고서 돌아갔다. 이에 울릉도에 배를 정박했던 사람을 치죄(治罪)하여 혹은 형신(刑訊)하기도 하고, 혹은 귀양보내기도 하였다.'

-숙종실록 26권, 숙종 20년 2월 23일 신묘 3번째기사-


조선이 보낸 답서에 '죽도'라 되어있지 않고 울릉도라 되어 있어서 항의를 하는 것이다. 죽도라고 표기를 고쳐달라며 말이다. 내가 봤을 때 이 귤진중이라는 자는, 조선이 보낸 답서에 '죽도'라 표기된 것을 에도에 보여주어 울릉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공고히 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귤진중을 따라온 왜인이 말한 '난처한 일'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남의 땅을 자기 땅인 양 말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일본 관리의 태도가 어이가 없었던지 조정에서는 이런 얘기도 오간다.

'후에 승지 김귀만(金龜萬)이 강연(講筵)에 모시고 있다가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이 옛날에 강원 도사(江原都事)가 되었을 때, 바닷가에 이르러 거주하는 사람에게 울릉도를 물었더니 가리켜 보이므로, 신이 일찍이 일어나 멀리서 바라보니 세 봉우리가 뚜렷했는데, 해가 뜰 때에는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영암(靈巖)의 월출산(月出山)에서 제주(濟州)를 바라본 것에 비한다면 오히려 가까운 편입니다. 신은 마땅히 이 섬에 진(鎭)을 설치하고서 뜻밖의 변고에 대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고기잡는 사람을 귀양보낸 일은 아마 지나친 듯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또한 소견(所見)이 있도다." 하였다.'


월출산-제주도 바라보는 거리보다 동해안-울릉도 바라보는 거리가 더 가까울 정도로 울릉도,독도가 우리 땅인데, 아예 이 곳에 진을 설치하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자는 것이다. 실제로도 이뤄졌다면 참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독도에 해병대를 배치하자는 주장을 내세운 바 있었다. 그 때는 진짜 해병대를 배치했다간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이유로 반대했었지만, 숙종시기에는 독도경비대도 없으니 사실상 이 곳을 지키는 조선인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곳에 진을 설치하여 영토를 지켜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한편 이에 대한 조선 사관의 논평은 참으로 사이다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왜인들이 말하는 죽도란 곳은 곧 우리 나라의 울릉도인데, 울릉이란 칭호는 신라(新羅)·고려(高麗)의 사서(史書)와 중국 사람의 문집(文集)에 나타나 있으니 그 유래(由來)가 가장 오래 되었다. 섬 가운데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또한 죽도란 칭호가 있지마는, 실제로 한 섬에 두 명칭인 셈이다. 왜인들은 울릉이란 명칭은 숨기고서 다만 죽도에서 고기잡는다는 이유를 구실로 삼아서, 우리 나라의 회답하는 말을 얻어서 그 금단(禁斷)을 허가받은 후에 이내 좌계(左契)를 가지고서 점거(占據)할 계책을 삼으려고 했으니, 우리 나라의 회답하는 서계에 반드시 울릉이란 명칭을 든 것은, 그 땅이 본디 우리 나라의 것임을 밝히기 때문이다. 왜인들이 반드시 울릉이란 두 글자를 고치려고 하면서도, 끝내 죽도가 울릉도가 된 것을 드러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대개 그 왜곡(歪曲)이 자기들에게 있음을 스스로 걱정했기 때문이다. 아! 조종(祖宗)의 강토(疆土)는 남에게 줄 수가 없으니 명백히 분변하고 엄격히 물리쳐서 교활한 왜인(倭人)으로 하여금 다시는 마음을 내지 못하도록 할 것이 의리가 분명한데도, 주밀하고 신중한 데에 지나쳐서 다만 견제(牽制)하려고 한 것이 범인(犯人)들에게 과죄(科罪)하는 말과 같이, 더욱 이웃 나라에 약점(弱點)을 보였으니, 이루 애석함을 견디겠는가?'


울릉도,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부터, 귤진중의 속셈과 조선 측 대응의 의도, 안용복 등을 벌준 것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 등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 정치인들 중에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를 이렇게 깔끔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런 명문장이 그저 사관의 가장사초로 남아 그저 우리가 보는데서 만족해야하는것이 아쉽기만 하다. 아무튼 한일간에 독도를 둘러싼 논쟁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래왔듯 계속 독도를 확실히 지켜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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